김 수 정

엄마와 사별한 후 아빠는 혼자서 힘들게 나를 키웠다. 남자 혼자서 딸을 키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겠지만, 우린 서로를 의지하며 씩씩하게 지냈다. 고모는 언제부턴가 아빠를 새장가 보내야 하지 않겠느냐며 은근히 내 눈치를 살폈다. 그때마다 “아빠도 좋은 사람 만나서 재혼해야지!”라고 최대한 쿨한 척 말했지만, 속으로는 늘‘만약 아빠가 재혼을 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걱정을 했다.

막연한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내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아빠는 재혼을 했다. 아빠가 재혼을 하면서 나에겐 새엄마와 세 살 많은 언니, 한 살 어린 남동생이 생겼다.

아빠와 단 둘이 살다가 갑자기 다섯 식구가 모여 살게 됐다. 모처럼 집안에서 느껴지는 안락한 온도에 나는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다. 아빠의 재혼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뾰족하게 감정이 돋아 있었다.

새엄마는 내게 친절을 베풀고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머릿속으로 TV 속에서 나오는 두 얼굴을 가진 계모들의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마음속으로‘아빠 앞에서는 천사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도 속으로는 내가 꼴 보기 싫을 거야.’라고 주문을 외우듯 되뇌었다. 주문 때문인지 새엄마와 한 공간에 있는 일은 매번 어색하다 못해 불편했다. 언니나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비슷한 또래라 쉽게 친해질 법도 한데 좀처럼 거리를 좁히기 힘들었다.

당시 사춘기에 접어들어 있던 나는 매사에 신경질적이었고 예민했다. 그날도 새엄마의 말에 날을 세웠다. 분명 새엄마는 날 걱정해서 한 말이었는데, 진심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친엄마도 아니면서 왜 자꾸 간섭을 하세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아줌마는 신경 쓰지 마세요!”

새엄마의 붉어진 눈자위를 보고 아차 싶었지만 한번 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미안한 감정은 잠시였다. 안방에서 달려 나온 아빠는 내 편이 되어주기는커녕 밑도 끝도 없이 새엄마를 감싸고돌았다. 새엄마도 밉고, 아빠도 미웠다. 설움이 북받쳐 오르고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만 같았다. 순간 돌아가신 엄마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아빠도 싫고, 다 싫어!”

온 힘으로 소리를 지르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안에 있던 언니와 눈이 마주쳤다. 언니는 나를 향해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나는 들어보려 하지도 않고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늦은 저녁까지 방황을 하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내 책상에는 언니가 쓴 편지가 놓여있었다. ‘언니로서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해 미안해. 우리 불편하고 어색해도 조금씩 거리를 좁혀가자. 우린 가족이잖아.’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그 짧은 문구가 이상하리만치 따뜻했다. 마음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온화하고 몽글몽글한 감정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만큼은 아빠보다 언니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

다음날 아침, 언니와 새엄마가 부엌에서 대화를 나누는 걸 우연히 엿듣게 됐다.

“나도 아직은 아빠가 어렵고 거리감이 있는데, 엄마도 현정이가 마음 몰라준다고 서운해 하지는 마. 나는 남동생이라도 있지. 현정이는 얼마나 외롭고 힘들겠어~!”

나는 속으로 ‘쳇, 뭐야! 누가 신경 써 달래!’라고 투덜댔지만 내심 기분은 좋았다. 그리고 확실히 그날 이후로 언니를 향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언니는 소위 말하는 모범생이었다. 늘 책상에 앉아 차분히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그러면서도 나에게는 정말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내가 기분이 좋지 않거나 예민한 날에는 잠들기 전 꼭 좋은 글귀들을 읽어주었다. 뾰족하고 날카롭기만 한 나의 사춘기 시절을 항상 부드럽게 달래듯 어루만져 주었다.

내가 대학교에 입학할 때쯤, 아빠의 사업이 부침을 겪으면서 가세도 기울기 시작했다. 첫 학기 등록금과 입학금은 아빠가 가까스로 내주었지만, 용돈 정도는 내가 벌어서 써야 할 상황이 되었다. 나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학과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새엄마가 “친구들이랑 밥도 먹고 새 옷도 사 입어~”라면서 돈을 손에 쥐어주었다. 또래들 한 달 용돈에 버금갈 만큼 큰 금액이었다. 집안 형편을 잘 알기에 사양했지만, 새엄마는 내 손을 꼭 쥔 채 “엄마가 이것 밖에 못 줘서 미안해!”라고 했다.

한 번으로 끝날 줄 알았던 새엄마의 용돈은 몇 달에 걸쳐 계속 이어졌다. 덕분에 시험 기간에는 아르바이트를 쉬고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고, 평소에도 제법 새내기 기분을 내며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다닐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우리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번화가에서 전단지를 돌리고 있는 새엄마를 보게 되었다. 나는 저 멀리 새엄마를 보고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전단지를 돌리느라 내가 저 앞에 서서 바라보고 있는 것도 모르는 새엄마를 보면서 깨달았다. 새엄마가 쥐어준 돈은 나에게 남들처럼 평범한 스무 살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새엄마의 진심이자 땀방울이었다는 것을.

대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는 가세가 완전히 기울었다. 더 이상 집에서 등록금을 보조받을 형편이 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휴학을 하고 본격적으로 일을 해 등록금을 벌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언니가 등록금을 선뜻 내주었다. 언니는 대학졸업 후 한동안 취업에 어려움을 겪다가 간신히 출판사에 취직해 많지 않은 월급을 받고 있었다. 화장품이나 옷 한 번 제대로 사지 않고 악착같이 모은 걸 알기에 도저히 받을 수 없었다. 그런 내게 언니는 “언니 마음이니까 받아줘. 그리고 언니 몫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생활을 즐겨!”라고 했다. 언니의 희생과 배려 덕분에 나는 남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원하는 곳에 취업까지 할 수 있었다.

이제 세월이 흘러, 나도 엄마가 되고 보니 새엄마의 마음결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친엄마보다 조금 늦게 만난 엄마. 나의 정신적 지주인 언니. 오빠처럼 든든한 남동생. 그들은 모두 나에게 너무 고마운 영웅이고, 내 삶의 주춧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