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경

5살 동생이 안 떨어지겠다고 울면서 매달리며 발버둥을 쳤었다. 엄마는 우리에게 약속을 하셨다. 꼭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초등학교 3학년. 친할머니가 계시는 아빠 집으로 가게 되면서 우리는 낙엽이 수북히 쌓인 골목길에서 이별을 했다. 그때 하늘은 노랬고, 신발은 무거웠으며 나는 너무 작았다. 10살 어린 나이였지만 엄마 앞에서는 울면 안 될 것 같았다. 뒤돌아서 골목 끝 모퉁이를 돌때 남동생의 손을 잡고 나는 눈물을 하염없이 쏟았다. 그날부터 내 안의 시계는 일 년이 24개월이었고 하루가 48시간이었다.

1. 마법의 지팡이를 타고.
중학교 3학년으로 올라갈 무렵 엄마는 천금 같은 약속을 지키셨다. 우리가 다시 모인 건 6년하고 3개월 만이었다. 아빠가 벌여 놓은 사업 빚은 모두 엄마 앞으로 남아 우리 모두를 짓눌렀다. 그래도 한 지붕에서 같은 이불을 덮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꿈같은 시간이었다. 좁은 집에서 셋이 누워 잠이 들면 난 밤마다 마법의 지팡이를 타고 미래의 나를 만나러 갔다. 꿈속에서 엄마는 나를 하늘 높은 곳까지 데리고 가서 밤하늘에 반짝이는 세상을 보여 주셨다.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꿈꿔라. 엄마가 안전하게 그곳까지 데려다 줄게. 걱정하지 마. 절대 떨어지지 않아.

엄마는 반드시 약속한 걸 지키시는 분이셨다. 언제나 말보다는 행동으로 노력하셨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사셨고, 젊어서 디자인을 전공했던 가늘고 긴 손가락은 마디마디 관절염으로 울퉁불퉁해지셨다. 언젠가 중학교 때 나는 엄마의 사진첩을 보다가 아, 우리 엄마가 이렇게 멋있는 분이셨구나. 패션쇼를 진행하고, 외국에 나가서 촬영도 하시고 멋있는 옷도 디자인했던 진짜 디자이너.

그런 엄마가 빚을 다 갚고 우리를 데려오기 위해 이것저것 안 해 본 일이 없으셨다. 철없던 나는 그때 엄마의 등이 휘어진다는 건 모르고 넓게만 느껴졌었다.

2. 마법의 수프를 끓이시다.
2013년. 42살. 엄마의 인생 목표가 바뀌셨다. 반드시 우리들의 꿈을 같이 찾아주고 이룰 때까지 열심히 돕겠다고 하셨다. 엄마는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해 특별한 재료가 들어있는 마법의 수프를 끓이셨다. 신기하게 그 수프는 우리를 주눅 들게 하지 않는 마법을 걸었다. 누구도 아빠가 없다고 놀리지 못했고, 아빠의 빈자리를 우리 남매는 느끼지 못했다.

동생이 4학년으로 전학 온 첫 달에 같은 반 남자아이가 시비를 걸어왔다. 키가 성인만 한 아이였다. 넌 뭔데 나를 빤히 보냐. 좀처럼 초등학생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동생은 겁을 먹었고 그 자리에서 조용히 무시를 했다. 하굣길 학교 후문에서 그 아이가 주먹질을 했다. 동생 이빨이 빠졌고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엄마는 그날 너무 당황하셔서 응급처치만 받고 담임 선생님의 잘 돌보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말만 들은 체 집으로 돌아오셨다. 엄마가 다음 날 학교를 다시 찾아가기로 결심을 하셨다. 이유는 하나. 다른 아이들도 계속 당할 수 있다. 고리를 끊자. 엄마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네가 00 이니?”같은 반 친구의 지목으로 덩치 큰 아이가 복도로 멋쩍게 불려 나왔다.

“네.. 그런데요”익숙한 일이었는지 그 아인 무덤덤하게 어른 앞에서 태연한 척을 했다.

“반 친구 때리고 사과는 했니? 아줌마가 어제 잠깐 너희 엄마를 뵀는데 항상 사고는 네가 치고 사과는 매번 엄마가 하셨다면서?” 학교에서도 이미 반 포기한 상태였고 전학을 시킬까 고민 중이었던 아이라고 들었다. 아이들과 담임 선생님이 복도에 둘러싸여 엄마를 쳐다봤다. 한편으로는 걱정하는 눈빛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우와 정말 멋있다’하는 표정이었다. 엄마 키가 정확히 170센티인데 집에서 제일 높은 구두를 신고 가셨으니깐 최소한 180센티는 넘어 보였다.

“아니요. 사과 안 할 건데요. 그리고 올해는 처음인데요”그 아인 친구들 앞이라고 기죽지 않은 것처럼 연기했다. 어리지만 나름의 자존심이었고, 자기 어깨 정도 오는 작고 힘없는 전학 온 아이라 깔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 힘으로 친구를 때리고 누르면 안 되는 건 4학년쯤이면 알테고, 그치? 사과할 생각도 없다고 하니 아줌마도 그럼 우리 아들한테 사과받지 말라고 할게. 대신에 어제 너희 엄마 보니깐 정확히 키가 아줌마 어깨도 안 오시던데... 그래서 아줌마도 사과 대신 너희 엄마 이빨을 하나 받으려고 해. 공평하지?”

담임 선생님은 진심 당황하셨고 아이들은 눈이 동그래졌다. 때린 친구는 자기 집으로 앞장서지 못했다. 분명 앞에 서있는 아줌마는 자기 엄마보다도 30센티 가까이 컸으니깐. 엄마는 복도에서 그 아이에게 약속을 받으셨다. 우리 아들 이름을 꼭꼭 눌러서 사과하는 편지를 한 장 꽉 채워서 써오라고. 그리고 반드시 내일 아침 수업 전에 반 아이들 앞에 나와서 큰 소리로 읽으라고 하셨다. 대신에 네가 약속을 지키면 아줌마도 이빨 치료비를 받지 않겠다고 말이다. 자존심이 센 아이였기에 수치심을 느끼건, 진심으로 반성 하건 두 번은 하고 싶지 않다는 걸 엄마는 알고 계셨다. 반 아이들은 1년 동안 그 아이의 눈치를 보지 않았고, 졸업할 때까지 단 한명도 학교 아이들은 맞지 않았다. 아이도 약속을 지켰고 엄마도 치료비를 받지 않으셨다.

3. 마법이 일어나다.
엄마는 갈수록 책 속에 파묻혀 사는 나를 걱정하셨고, 공부에 소홀할까 봐 진로를 같이 고민하셨다. 책 속에 빠진 난 도로시처럼 구두를 두 번 톡톡 치면 회오리를 타고 꿈꾸는 세계로 갈 수 있다고만 생각했었다. 점점 자라면서 아니라는 걸 아는 순간 엄마가 말씀하셨다.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어. 엄마가 네가 가는 길에 외롭지 않게 따라가면서 친구가 돼줄 수 있지만 그 길은 네가 선택하는 거야. 두렵고 막막했다.

나 자신이 선택한 길이 후회가 될까 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글을 쓰기 시작하고 차츰 학교에서 교내상을 받아왔다.

“우리 딸 글쓰기에 소질 있네”
“아니야. 교내에서 받은 건데 뭐, 전국도 아니고. 다른 아이들은 큰 대회에서도 많이 받는데, 이렇게 해서 국문과에 입학하면 예능 작가로 성공할 수 있을까?”
엄마는 잘 할 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점점 자신감도 떨어지고 취업의 문턱이 높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이런 나를 보고 엄마는 몇 달 전 글을 써보겠다고 선언을 하셨다. “무슨 글? 엄마 글 써본 적 없잖아? 수필이나 수기 같은 거? 아니면 일기나 독후감??”
“아니 단편 소설”

난 엄마와 같이 사는 동안 잠시 잊고 있었다. 엄마에겐 우리를 지키는 신비한 마법과 머릿속에 꼭 이뤄내는 주문이 있다는걸.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써보는 소설을 차츰차츰 자신만의 방식으로 차분하게 써 내려가셨다. 나에게 무언가를 보여 주기 위함 아니라 본능적으로 길을 더듬어 가듯이 밤낮으로 글쓰기에 매진하셨다. 놀라웠다. 최근 몇 년간은 독서는 물론이고 우리들 학비 대기도 바쁘셨는데. 엄마의 평소 메모하시는 습관, 남다른 표현력과 관찰력이 짧은 기간에 빛을 발했다. 나는 엄마에게 첫 단편 소설을 경험 삼아 기성 작가 포함하는 공모전에 내보자고 말했다.
한 달 뒤.. 00일보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000 문학상 차하상 수상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마법이 일어났다. 엄마는 또 한 번 나에게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셨다. 안 가본 길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을. 평생 다른 길을 갔었지만 언제라도 엄마처럼 다시 도전하면 되니 괜찮다고 하셨다. 영원한 나의 히어로 엄마. 진심으로 축하하고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