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가 넘었는데 장난감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들여다보니, 첫째는 15개월 막내와 놀아주면서 장난감을 정리하고 있다. 장난감 방 정리를 방해하는 동생이 미울 법도 한데, 미운 기색 하나 없이 오히려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놀아주고 있다. 물론 틈틈이 정리도 하면서. 나를 지켜주는 여섯 살 첫째 딸은 그렇게 오늘도 하루의 마무리를 도와준다.

현역 군인인 남편의 갑작스러운 이동 명령은 우리 부부를 한순간에 주말부부로 만들었다. 한 달 뒤, 함께 지내던 시어머니마저 분양받은 아파트로 가셨다. 완공 시점보다 1년 일찍 집 문제가 처리되어 지낼 곳을 찾으시던 시어머니는, 갓 돌 지난 막내가 있는 나에게 육아 도우미를 자처하셨다. 그랬던 시어머니가 가시는 시점에, 코로나로 인해 남편은 이동 금지 명령이 떨어져 주말에도 올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두 명의 든든한 육아 지원자를 한꺼번에 보낸 내 앞에 남겨진 것은, 여섯 살 첫째와 생일이 늦고 발달도 늦은 세 살 같은 네 살 둘째, 그리고 막 걷기 시작한 막내였다.

집 밖은 코로나가 짙은 겨울이고, 집안은 끝없는 고됨이 짙은 육아뿐이었다. 두려웠다. 아이들을 먹이고 돌보는 것보다, 내가 지치고 망가질까 봐 그것이 두려웠다. 애를 셋이나 낳아 키웠지만 여전히 육아에는 서툴렀다. 육아에 지친 내 마음속 구멍 난 자리를 돌아보고 다시 메우는 것에는 더욱 서툴렀다.

그러나 나의 영웅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할머니가 가던 아침만 해도, 어린이집 등원 내내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않던 첫째는 하원과 동시에 여전사가 되었다. 홀로 남겨진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동생들을 돌보고 집을 정리해야 한다는 결심이 여섯 살 마음의 어느 구석에서 생겨났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나는 겉보기엔 세 딸의 보호자였지만, 속사정은 어린 두 딸과 든든한 육아 지원자와 함께 지내게 된 것이다.

반찬 투정은 원래 하지 않았다. 준 밥은 군말 없이 한 자리에서 다 먹고는 그릇은 싱크대로 옮겨 둔다. 엄마가 막내를 먹이는 동안, 둘째를 밥 먹여 준다. 여기저기 흘린 음식물은 물티슈로 닦는다. 엄마가 설거지를 하거나 씻는 동안 두 동생을 데리고 놀아준다. 동생들이 원하는 간식을 냉장고에서 꺼내 준다. 동생들이 싸우면 말리거나 화해시키고, 잘못한 동생을 따끔히 혼내주기도 한다. 막내가 울기라도 하면 큰언니답게 어르고 달래주는데, 그러면 막내는 언니 품에 안겨 금방 울음을 그치는 것이다.

엄마가 아기 기저귀 갈아주는 동안 둘째의 화장실 일을 해결해주기도 하고, 동생들이 목 마르지 않도록 말하지 않아도 물을 먹여 준다. 씻고 나와서는 자신은 물론 동생의 몸에 로션을 발라주고 옷을 입혀 준다. 팬티를 반대로 입히는 때가 더 많긴 하지만, 그것마저도 자기가 알아차리고 다시 제대로 입힌다. 잠들기 전 엄마가 소파에 앉아 쉬고 있으면, 엄마 손에서 핸드폰을 내려놓게 하고는 어깨와 팔 이곳저곳을 주물러 준다. 이때 엄마에게 칭찬받기 위해 자기가 한 일들을 엄마에게 말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엄마가 막내를 재우는 동안, 첫째는 둘째를 재운다. 밤잠이 없는 동생에게 여러 자장가를 불러주고 토닥토닥 해 주다가 대부분은 먼저 잠드는 언니이다. 새벽 내내 자주 깨는 막내 탓에 아침잠이 많은 엄마를 위해, 먼저 눈 뜬 첫째는 막내를 데리고 조용히 거실로 간다. 티브이를 틀어 막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보게 하고, 얼른 냉장고에서 아기 치즈와 물을 가져온다. 동생에게 먹여 주고 놀아주고 있다 보면 잠이 깬 엄마가 거실로 나온다. 엄마는 그저 잘 놀고 있는 아기의 기저귀만 갈아주면 된다.

두렵기만 했던 애셋육아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어쩌면 나의 첫째 딸은, 적어도 육아에 있어서는 나보다 더 많은 몫을 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새 이만큼 자라 ‘육아 원더우먼’이 되어 준 첫째 딸 덕분에, 나는 코로나 독박육아 한가운데에서 ‘여유’라는 작은 샘을 갖게 되었다.

제아무리 원더우먼이어도, 여섯 살은 어쩔 수 없는 여섯 살이었다. 언니가 열심히 그리고 만든 소중한 작품을 동생들이 망가뜨릴 때면 여지없이 엄마에게 울며 안겼다. 할머니, 아빠와 영상 통화할 때면 ‘보고 싶어’를 외치다 결국엔 눈에서 물이 흐르고야 만다. 보고 싶은 애니메이션을 동생들 때문에 못 볼 때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서러움의 눈물을 삼킨다.

아무리 동생들이 꺼내 온 장난감이라고 해도 치우는 것은 결국 언니 혼자이다. ‘맏이여서’ 감당하라고 하기엔, 아직은 그저 여섯 살일 뿐이다. 가끔은 ‘동생들이 없었으면 좋겠어요’라고 조용히 내뱉기도 하지만, 이내 동생들 손을 잡고 엄마도 되었다가 어린이집 선생님도 되기도 한다. 여섯 살이 짊어지기엔 꽤 묵직한 육아와 감정들인데도, 나의 첫째는 늘 훌륭히 소화해 낸다. 어설픈 엄마가 갖지 못한 덕목들을 갖고 있는 이 아이의 당찬 눈과 입, 부지런한 손이 엄마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

유난히 예민한 첫째 때문에 육아는 늘 고통스러웠다. 날 선 육아를 받아들이기에 나는 너무 준비되지 않았고 무지했다. 반복되는 매일의 육아와 그만큼 성장하는 아이를, 서툰 엄마는 그저 견디고 버티며 지나고 키워왔다. 기질이 예민한 아이를 키우는 것에 비례해 나의 우울은 깊어져만 갔다. 아이의 예민함이 정점에 다다르던 때에 둘째를 임신했다. 나의 임신과 육아에서 즐거움, 기쁨, 보람, 행복 이런 긍정적인 어휘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참고 견디면 지나간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 주변의 이런 조언은 아무 힘이 없었다. 참고 견디기에 육아의 시간은 너무나도 더디게 흘러갔다

그러나, 더디어도 시간은 흘렀다. 아이의 예민함은 섬세함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섬세함은, 엄마의 감정을 읽는 세심함과 영민함도 포함하고 있었다. 티브이의 슬픈 장면을 보며 몰래 눈물을 훔치는 엄마를 보고는, ‘엄마, 울지 마요. 내가 있잖아요’라며 손등으로 엄마 눈을 닦아주는 아이가 되었다. 어느새 나의 지친 몸을 쉬게 해줄 뿐 아니라 마음도 어루만지는 꼬마 히어로가 된 것이다

히어로의 절대 덕목인 ‘용기’도 갖추고 있다. 엄마 아빠의 곁이어도 불만 끄면 무서워서 소리 지르며 울던 아이가, 이제는 잠들 때 먼저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눕는다. 아직 혼자 계단으로 한 층을 오르내리는 것은 무섭지만, 그래도 엘리베이터는 혼자서도 한 층 정도는 오르내릴 수 있게 되었다. 커다란 강아지에도 먼저 다가가고, 우는 친구에게 ‘누가 그랬어?’라며 안아주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원더우먼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빠와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부재를 받아들이는 것, 그런 엄마의 처지를 이해하는 것, 힘든 엄마를 위해 집안일을 돕고 동생들을 돌보고 엄마의 휴식을 보장해 주는 것, 동생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고 사랑으로 감싸주는 것, 엄마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보듬어 주는 것, 떼쓰고 싶고 엄마가 미워지는 마음을 덮어두는 것, 아빠와 할머니가 보고 싶어도 그저 참는 것, 이것들을 가슴에 품고서 엄마를 볼 때마다 ‘사랑해요’라고 말해주고 웃어주는 것

고작 여섯 살짜리가 이 모든 것을 해낸다.

여섯 살 꼬마 히어로가 나를 매일의 고된 육아에서 구해주고 있다.

볼품없는 내리사랑은 위대한 치사랑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것을, 나의 첫째는 작은 몸으로 증명해내고 있다. 그 치사랑에 힘입어 나는 내일도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갈 수 있다.